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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이들의 야한 생각

섹스중독

작성일 : 2015-08-06

중독은 이성(理性)이 지배하기 힘든 본능의 뇌 영역에서 일어난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음식을 계속해서 먹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음식중독처럼 섹스중독 역시 꼭 섹스가 필요한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박적으로 섹스에 집착하게 되기도 한다.
인간의 본능 중 가장 강력하다는 성욕. 섹스중독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다양한 중독을 이해하는 좋은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에겐 현자의 시간이 있습니까

섹스에 관해서 우리의 뇌는 끝없이 몇 단계로 이루어진 뫼비우스의 띠를 경험한다. 성욕 인지 → 이를 해소할 대상 물색 → 구체적 행위 실행 → 만족 또는 후회와 자책 → 다음 성적 행동을 억제하려는 의지. 이 단계를 토대로 일반인과 성 중독자를 굳이 구분하자면, 마지막 두개의 단계, 즉 '만족 또는 후회와 자책감', '성적 행동 억제'에서 구분 지어진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이 단계에 이르면 이른바 '현자타임'이라는, 성적 욕구 해소로 인해 성욕이 사라지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자아를 만나게 된다. 성적 행위 후에 찾아오는 허무함을 다른 사고나 행위로 채우고 다음 성욕을 맞이할 때까지 비교적 건전한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성 중독자들은 그 시간이 짧은 것으로 보인다. 성적 행위 후 찾아오는 공허함을 다른 행위가 아니라 또 다시 성적 행위로 채우려 한다는 것이 중독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섹스 중독자들의 모습

여주인공 조는 선천적인 색정증을 지녔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콘트롤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성 중독자라 할 수 있을까.

'여성 색정증'이라는 의미의 제목 자체가 설명하고 있듯 여주인공 조는 소위 '밝히는 여자'다. 친구와 누가 더 많은 남자와 관계를 갖는지 대결을 하는가 하면 SM부터 쓰리썸까지 일반인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행위를 지속한다.
하지만 과연 그녀를 성 중독자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녀는 성적 행위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며, 적어도 자신의 삶을 콘트롤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그녀는 선천성에 가까운 색정증으로 판단된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그녀에게 "당신은 왜 성 중독자가 되었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배고픈 사람에게 "왜 밥을 먹으려 합니까?"라고 질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 설리반은 정서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섹스에 집착한다.

<셰임>속 대물 주인공 설리반은 후천적 중독자 혹은 결핍자에 가깝다. 그의 중독에는 동물적인 욕구나 호르몬작용보다는 정서적 혹은 심리적 불안감과 결핍, 그리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또 다른 불안감이 더 크게 작용한다. 그는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섹스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설리반의 예를 통해 우리는 성 중독이 단순히 육체적인 작용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인 절박함에서 그 존재의 이유를 찾아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레이는 섹스에 대한 탐닉이 계속될수록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아이러니한 매력이 있는 미스터 그레이는 어떤가.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각으로 철저히 성공한 남자다. 하지만 그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있는데, 거부감을 느낄 정도로 강한 성적 자극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비밀의 방을 만들 정도니. 그에게 정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횟수가 아니라 '강도'가 아닐까. 섹스에 대한 탐닉이 계속될수록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중독 보상시스템은 우리의 뇌에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줘야 만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약물중독자들이 결국 약물 과다투여로 숨지는 것도 이런 원리다. 한편 그레이 같은 SM의 성향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다. 그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도찐개찐 미스 그레이'를 만나면 의외로 간단히 해결된다. 개개인의 성적 취향을 근거로 짝을 맺어주는 '묶어듀오' '훔쳐봐듀오' 같은 결혼정보업체의 등장을 상상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편의상 대중영화들의 예로 섹스중독을 분석했지만 이런 양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든 그렇지 않든 실제로 전개되고 있다. 과거 영국 BBC에서 제작한 <어느 섹스중독자의 고백 – 원제:HYPERSEX>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섹스중독자 폴은 "사회적으로 금지된 섹스를 하는 건 마약을 즐기는 것과 같다"고 전한다. 누구나 여성 취향은 다르지만 크든 작든, 날씬하든 뚱뚱하든 섹스만 하겠다고 하면 가리지 않는다는 얘기도 함께 말이다. 사실 누구나 사회와 이성이 씌워준 가면을 벗어 던지면 이런 삶을 살 수 있고 그것이 처음에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나중에는 많은 삶의 경계들을 모호하게 만들 것은 뻔하지 않은가. 그래도 그의 이런 취향을 꼭 존중해야 한다면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바타유 (Georges Bataille)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 된다. "금기의 대상은 금지되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중독은 우리의 이런 청개구리 같은 습성 혹은 초자아적 자유의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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